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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기고] 함께 만드는 노조하기 좋은 세상
작성자 노무법인현장
작성일자 2022-12-22



함께 만드는 노조하기 좋은 세상 (매일노동뉴스, 2018. 02. 13.)



- 구동훈 공인노무사

 

노동조합을 자문하는 노무사로서 가장 큰 보람 중 하나는 새로운 노동조합을 만드는 일에 참여하고, 그 노동조합이 스스로 조직운영되어가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는 일이다. 관련 산별노조가 있고, 그 노동조합이 산별노조에 가입할 의사가 있다면 단순히 산별노조를 소개하는 것으로 내 역할은 그치기도 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노동조합 설립에서부터 초기 참여자를 대상으로 한 기본적인 노동조합 운영, 단체교섭이나 협약 체결 전반에 필요한 교육 등을 진행하면서 초기 노동조합 활동에 함께 하게 된다. 그래서 노동조합 설립 초기에는 품과 시간이 더 많이 들어가고, 그만큼 애정은 깊어진다.


 
노동조합 설립신고증에 감격하는 모습을 보게 되고, 자신들의 요구안을 만들면서 다른 노동조합이 체결한 단체협약을 부러워하며 자신들이 처해있는 현실과 모범 단체협약 속에서 갈등하고 고민하는 그들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회사에 교섭요구 문서를 보내고 상견례 날짜가 다가올수록 그들의 긴장과 초조, 온갖 상념들로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내 역할은 예상되는 절차별 시나리오와 대체적인 대응방안들을 설명해주면서 처음 가는 길이 그들이 예상할 수 있는 범위 내에 있다고 생각하게 만들고 실제 그렇게 되도록 하는 일이다. 너무 많은 고민의 가지치기가 신중함을 넘어 행동의 굼뜸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불안을 다독이는 일이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단체협약을 체결하고 조합비 문제도 해결되고, 예산안과 사업계획을 고민하고 실천하면서 노동조합으로서의 운영은 안정화 국면에 들어가게 된다. 그러면서 내 역할은 점점 줄어들고, 일상적 조합활동을 스스로 고민하고 해결해 나가는 그들에게 나는 물어올 때 의견을 주는말 그대로 자문노무사가 된다. 나는 그렇게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잊혀져가는(?) 자문노무사가 되는 것이 바람이고 보람이다.


 
여기까지 초기 참여자들의 수고는 남다르다. 조합비도 없거나 넉넉지 않아 자신의 월급 일부를 쪼개고, 퇴근 이후나 휴일에 쉬지도 못하고 노동조합을 챙겨야 한다. 조직은 술의 양에 비례한다고, 그들은 조합가입 독려를 위해 매일 밤늦도록 지역을 찾아다니며 조합원을 만나고 술을 마신다. 노동조합 설립과 운영에 필요한 다양한 의사결정을 하자니 회의는 잦고 매번 끝없이 길어진다. 새로이 조직을 만들고 이를 꾸려가자면 결국 시간뿐만 아니라 돈도 큰 문제가 된다.


 
필자는 지난해 말부터 올해까지 대구를 몇 차례 다녀왔다. 작지만 소산별 노동조합을 만들어가고 있는 노동자들을 만나기 위해서다. 노동조합을 만들겠다, 만들어야겠다는 뜻만 세웠을 뿐 달리 무얼 준비해야 하는지,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를 알지 못한 채 3~4년을 고민만 해왔다 한다. 그러던 중 어느 자문노조가 그 사실을 알고 지원을 시작했다. 자문노조는 나에게 초기 노동조합 설립절차에서부터 운영에까지 지원해 줄 것을 요청했고, 모든 비용을 부담했다. 그렇게 지원을 요청받은 신설노조는 한 곳에서 두 곳으로 늘어갔고, 나는 그 자문노조의 일보다 신설노조들을 위한 활동에 더 많은 시간과 품을 들여야 했다. 자문노조는 초기 노동조합 설립과 운영에 필요한 비용 일부를 연대기금으로 지원했다. 자문노조 간부들 역시 수시로 대구까지 내려가 신설노조 간부들을 만나 고민을 나누고 경험을 나눴다. 신설노조는 도움을 주는 자문노조의 숨은 의도가 있지 않은지 헤아리려 하거나 경계의 마음을 갖기도 했다.


 
어느 날 교육을 마치고 난 뒤풀이 자리에서 신설노조 위원장이 조심스레 내게 물었다. “저 노동조합은 왜 우리 노동조합을 이렇게 도와줘요?” 나는 자문노조 위원장으로부터 들은 말과 직접 목격한 자문노조의 일상을 기억나는 대로 전했다. 그 노동조합은 그걸 연대라 생각하고 있다고, 당신네 노동조합이 제 자리를 찾고 그러다 다른 노동조합을 도울 기회가 있으면 그렇게 하라고, 그 노동조합은 그렇게 노동조합을 함께 만들어 가고 싶어 하는 노동조합이라고.


 
그 자문노조는 몇 년을 그렇게 실천하고 있다. 도움을 주고도 성과에 대해서는 고맙다는 말 한마디 듣지 못하고, 혹 잘못된 결과에 대해서만 덤터기를 쓰는 시행착오도 겪었다 한다. 지난 해 자문노조는 기업별노조의 벽을 넘어 21노조로 조직형태를 바꿔야 했고, 상근간부 4명은 늦은 밤까지 조합사무실을 지키며 ‘PC 셧다운제를 쟁취해내면서 지난 해 사업계획들을 차곡차곡 결과물로 마무리했다. 그 바쁜 틈틈이, 사업계획 속에는 연대활동이 있었고, 연대활동 속에는 돈만이 아니라 시간까지를 포함하고 있다. 그리고 올해는 협동조합까지 꿈꾸고 있다.


 
연대(連帶)’의 사전적 의미는 한덩어리로 서로 굳게 뭉침으로 풀이된다. 지난 해 9월 한국노동연구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시민들은 노동조합에 대한 긍정적 인식이 87년 수준으로 좋아졌다고 하면서도 노동조합의 영향력이 향상될 것이라는 전망에서는 200748.2%에 비해 201726.3%로 낮아졌다고 한다. 10%에도 미치지 못하는 조직률의 한계, 한 덩어리로 서로 굳게 뭉치지 않은 결과로도 해석될 수 있다. 노동조합 만드는 일이 태산을 옮기는 일처럼 느껴지는 노동자들에게 선배 노동조합이 먼저 내미는 손, 노동조합을 만드는 일에서부터 시작되는 연대, 조직화 사업을 총연맹이나 산별노조의 몫만으로 돌리지 않는 연대로 노조하기 좋은 세상을 함께 만들어 가자. 세상을 바꾸는 투쟁도 연대의 힘에서 시작한다.


 
<후기> (매일노동뉴스, 어떤 노무사들, 2022. 9. 16.)


 
2018년에 이 글을 쓰고 난 후 4년이 훌쩍 흐른 지금, 노동조합 만드는 일이 가장 어렵다고 말했던 분들이 노동조합 집행부로 여전히 활동하고 있고, 단체교섭을 해보니 노동조합 설립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는 농담의 시기를 지나, 단체협약 체결 이후 일상적 조합활동을 하면서부터 차라리 단체교섭에만 집중했던 시간들이 그립노라는, 지난 시간들의 무게만큼 고군분투하며 쌓아온 경험에서 나오는 말들을 들으며 보람과 희망을 찾는다.


 
초대 위원장이 연임을 한 곳들도 있고 새로운 집행부가 들어선 곳들도 있지만, 4년의 시간은 노동조합 집행부나 대의원으로서의 활동 경험이 있는 조합원을 둔, 그 경험으로 집행부를 지지지원하는 노동조합 활동의 저력이 되는, 시간이 아니고선 미리 가질 수 없는 귀한 자산을 가진 노동조합으로 성장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집행부 내부적으로 노동조합의 가치나 지향, 방향성이나 속도에 대한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해 성장통을 겪고 있는 곳들도 있고, 여전히 집행부나 대의원을 찾지 못해 몇몇 간부들만의 희생과 헌신으로 꾸려나가는 조직도 있다. 사업장 울타리를 벗어나 연대하는 의미까진 아직 이해하지 못하거나 실천에 옮기지 못하는 곳들도 있다. 여전히 선배 노동조합은 그들 곁에서 경험을 나누기도 하고 고민을 함께 하고 있다. 함께 만드는 노조하기 좋은 세상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의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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